[유춘희의 IT 눈대목] 죽으라고 일만 하시는 분들에게 드림











유춘희 (Golf for Women 편집장)

2004/02/27











align="left" valign="top" border="0" hspace="4">정보기술(IT)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알고 지냈던 사람 중 한 분과 엊그제 만났다. 대기업 SI 업체 출신인 그는 우리나라 네트워크 산업의 산증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인정받던 사람이다. 기술자로서 네트워크에는 척척박사였다. 그런데,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서 자의반 타의반 나왔다고 했다. 막상 나오고 보니 어찌해야 할지 몰랐단다. 닿고 닿아 필자와 연락이 된 것이다. 필자 역시 그와 최근에 만난 게 3년은 족히 넘었지 싶다.



그는 “내가 헛살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현재 처지를 얘기하고 도움을 청할 사람이 정말 없더라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지금은 골프 잡지를 만들고 있는 나에게까지 연락을 하였을까. 술만 입에 댔다 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통에 술친구도 없다. 영업사원이 아니어서 밖의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 오로지 일밖에 몰랐다. 어렴풋한 기억이, 언젠가 축구 한일전을 보기 위해 저녁식사 겸 음식점으로 향할 때 그는 관심도 없다는 듯 회사를 지켰다.



회사와 집밖에는 몰랐다니…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못했는데 그는 회사와 집밖에는 몰랐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도 집과 학교밖에 몰랐다는 것이다. 대학교 들어와서 처음으로 영화 구경을 했다고 하니 누가 믿겠는가. 남들이 출근하기 전에 이미 회사에 나오고 별 특별한 일이 없으면 회사에서 일을 더 하고 집으로 갔다. 정말 회사와 집밖에 몰랐다! 이쯤 되면 그의 성격에, 아니 취향에 좀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지금까지 그를 지탱한 것은 바로 일에 대한 집착과 열정이었다. 그런 열정이 그를 전문가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몇 안되는 친구도 만나지 않을 만큼 일에 몰두하는 그의 취향이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기술적으로 부족한 기자들에게 언제라도 정열적으로 조언을 해주고, 원고가 ‘빵꾸’나면 마감 몇 시간 전이라도 훌륭하게 메워주는 역할도 종종 해주었다.



나와 얘기 도중 그는 손을 몹시 떨고 있었다. 손이 떨리고 온몸에 피곤이 몰려오고 기운이 떨어지는 증상,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심할 때는 떨리는 손이 잔을 건드려 탁자 밑으로 떨어뜨린 적도 있고, 물을 마실 때 컵 안의 물이 출렁거릴 때도 있단다. 누가 볼까 봐, 자신이 약해 보이는 게 싫어서 회사 동료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차를 마시곤 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그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 중에는 그런 것도 있었다.



나 자신이 그 사람과 같은 라이프스타일과 대인 관계로 살지 않아서인지, 나보다 연장자인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오히려 나의 살아온 내용을 조언해주듯이 말했다. 언제나 멀게 느껴졌던 다른 사람들과 지금이라도 저녁도 함께 먹으며 우애를 쌓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성공을 위해 달려온 만큼 당신은 성공을 이뤘고, 지금 상황에 실망할 게 아니라 평정을 찾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나…



회사에 충성을 다한 결과가 결국…



“정말 지쳤어. 이젠 어디 취업하겠다는 생각조차 안해. 돈은 쓸 만큼 번 것 같고…” 그리고 “지금이라도, 이제까지 만나지 못한 사람들 하나씩 만나고, 골프도 배워야겠다”고 덧붙였다. 그러고는 좋은 골프클럽 좀 추천해주고 골프에 관해서 도움 좀 달라고 지나가는 듯이 말했다. 이제야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인생에 관심을 가져야 할 다른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지금 그는 일을 떠나,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한다. 이제까지 외부로부터 자신을 차단시켜왔던 그가, 이제 어딘가에 열정적으로 집중하려고 한다. 그게 골프가 됐든, 친구들이 만든 술자리에 적극적으로 나가는 것이든, 자신이 자리를 만들어 아는 사람을 부르든 간에. 바깥 세상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방법을 빨리 체득해서, 그의 인생이 가을에서 봄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림픽 유도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꼭 이겨야 되겠다는 생각보다 매트 위에서 경기를 즐기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참 어려운 얘기다. 내 가족의 생계를 위해 회사와 사장의 명령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은 당장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들까지 돌보지 못하면서 일에 빠지지는 말자.



만약 지디넷 독자들 중에 회사에 충성을 다한 결과가 이 사람처럼 나타났다면 어떻게 할 텐가. 돈을 벌었다는 것 빼고. 아니 돈을 벌었다고 쳐도. 직접적인 원인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병까지 얻었다. “당신이 이제까지 회사에서 달성한 여러 가지 것들을 자랑스러워해야 하시라”는 것뿐 누가 그걸 알아줄까. 그의 육체적 노동과 정신력 노력들, 덧붙여 그의 독특한 인간 관계는 그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앗아갔다.



도대체 우리 직장인들이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올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일과 사회 생활을 적절하게 병행할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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