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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글들

재생을 위한 고양이 살해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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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무릉동원님의 블로그 ( http://seolleim.net/tt/index.php?pl=791 )


고양이는 목숨이 9개랍니다. 서양 속담으로는요..

중학교 3학년때, 저와 친구들은 그 속담이 사실인지 확인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그때는 호기심이 왕성한 나이죠.


우리는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친구를 찾아내 그 친구를 설득했습니다.

여차저차하니 이케저케해서 요렇게 하자.

순진한 그 친구는 우리의 '협박성 설득'에 넘어가 <재생을 위한 고양이 살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나른한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쬐던 어느 토요일 오후

우리 팀(고양이 살해 프로젝트에 참여한 멤버 6명)은 친구집의 옥상으로

고양이를 끌고 왔습니다.


우리는 손에 한가지씩 무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조그만 망치를 들고 있었죠. 삽을 든 아이도 있었고, 빗자루를 들고 있던

아이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무기로 고양이를 내리치지 못했습니다.


고양이를 반드시 무언가로 때려 죽여야한다는 조건은 없었습니다.

약을 먹여 죽이는 방법도 있었고, 높은 곳에서 떨어트려 죽이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패죽여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했었던거죠.

그 이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꿈 많은 사춘기 소녀들의 몽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6명 중 어느 누구도 고양이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우리로썬 상당히 심각한 딜레마였습니다.

죽여도 다시 살아나리라 믿었지만 죽이지 못하고 있는 거였죠.


결국 우린 옆반의 여드름쟁이 현철군을 불렀습니다.

남자들 사이에서 소위 학교짱이라 일컬어지는 현철군은 못생긴 얼굴만큼

사악한 녀석이었죠.

현철군은 그 당시 유행했던 나무 쌍절곤을 이용해 고양이를 죽였습니다.

묵직한 쌍절곤으로 고양이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치고, 발로 차고, 도망가는

고양이의 꼬리를 잡아 바닥에 내팽겨치고...

현철군은 널부러져있는 고양이를 우리에게 넘기며 말했습니다.

"별거 아니야. 이런일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 그리고 다음주에 영화 보기로 한거 잊지마."

그랬습니다. 고양이를 죽여주는 조건으로 전 여드름쟁이 못생긴 현철군과 영화 데이트를

약속한 것이었습니다.


어째든 고양이는 죽었고, 그 시체의 처리는 우리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우린 그 친구의 뒤뜰에 고양이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기도하는것도 잊지 않았죠.

모두들 고양이의 무덤앞에서 고양이가 다시 돌아오기를 염원했습니다.

철부지 사춘기 시절에 참혹한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고양이는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멍청한 짓거리였죠..


1주일을 기다린 후 우리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미 고양이가 8번 죽었었나봐. 우리가 9번째로 죽인걸꺼야. 그러니 안돌아오지.

그걸 미리 확인 안하다니.. 뭐 어쩔수 없는 일이지. 다음엔 더욱 준비를 철저히 하자고.."


하지만 그 다음이란 없었습니다.

고양이가 죽는 그 참혹한 광경을 누구도 다시 보고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1993년 6월의 어느 날, <재생을 위한 고양이 살해 프로젝트>는 그렇게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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