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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의 맛있는 IT] 첫 번째 채팅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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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의 맛있는 IT] 첫 번째 채팅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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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의 맛있는 IT] 첫 번째 채팅의 추억

김은식(컬럼니스트)  
2004/07/16        

오랜만에 내린 큰비 때문인지, 저녁 내내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 이왕 늦은 시간이라 서비스 업체에 신고를 하기도 무엇하고, 그저 깔끔하지 못한 기분으로 이것저것 오랜만에 네트워크가 없이도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인터넷에 연결된 채 켜져 있는 컴퓨터가 없으면 기분이 깔끔하지 못하다. 왜 그럴까.

사실, 인터넷이 없다고 해서 큰 지장이 있을 것도 없었다. 아니, 인터넷에 연결이 된다고 해서 크게 즐거울 일도 없었다. 요즘 따라 나는 이것저것에 싫증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한동안 심하게 열을 올렸던 고스톱이나 네트워크 퀴즈 같은 게임들에 물리기 시작했고, 그 사이 덩달아 몇 군데 들락거리던 커뮤니티도 뜸해졌다. 업무 자료를 찾는 데야 몇 십 분이면 충분했고, 그렇다고 여기저기 도배질을 할 만큼 글이 잘 써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기껏 여기저기 포탈 뉴스섹션에서 중요한 뉴스, 재미있는 제목의 뉴스, 그리고 기어이 선정적인 제목의 뉴스까지 훑어가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나의 최근 인터넷생활이다. 그러면서도 딱 끊고 책이나 읽거나 잠이나 잘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을 보면 벌써 심상치 않은 중독증상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건, 그래서 요즘 나의 고민은 인터넷을 딱 끊지는 못하더라도, 이놈을 가지고 정말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슨 중독자처럼 반사적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며 풀어진 눈으로 모니터와 눈싸움을 벌이는 것 말고, 뭔가 정말 신이 나고 가슴 떨려가면서 놀아볼 방법이 뭔가 없을까 하는 생각에 또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를 이렇게 무섭게 옭아매고 있는 네트워크라는 놀이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불과 십여 년 전, 대학에 다닐 무렵이었다. 한 삼사학년 되었을 무렵, 호프집 테이블에서 갑자기 생소한 화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몇몇 친구들이 채팅이라는 것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면서 나를 따돌리기 시작하더니, 저희들끼리 무슨 아이디라는 것을 나누고 밤에 채팅으로 만나자거나 하는 생뚱맞은 약속을 하기까지 했었다. 왠지 뒤떨어지는 느낌이 싫어서 내가 이래저래 컴퓨터통신에 접속하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한 달에 만 원 하던 접속요금을 과감하게 결제하고, 들어선 곳에서 나는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제일 먼저 자료실 곳곳을 뒤져대기 시작했다. 그때 말로 ‘다운족’이었다. 그리고 무슨 무슨 연구회니 하는 폼 나는 동호회 몇 곳을 가입했고, 게시판 유머방에서 죽을 치고 반나절씩 혼자 깔깔대곤 했었다. 그러는 사이 수화기를 들었다가 난데없는 소음에 놀란 어머니에게 한 번씩 구박을 듣는 일도 늘어갔다.

그렇지만 정작 채팅이라는 것을 시작하기까지는 또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꼭, 초등학교 입학 날 처음 만난 사이에도 왁자지껄하던 다른 녀석들 한 편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혼자 어색해 어쩔 줄 모르던 그 때처럼, 영 낯선 사람 접하기가 겁나고 어색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통신의 재미는 채팅이라던 친구들의 말을 믿고, 큰 용기를 한 번 내보기로 했었다. 얼굴도 안 보이는 곳에서 실수를 하면 하는 것이지, 뭐 부끄러울 것이 있겠나. 심호흡을 댓 번은 하고서야 채팅방에 들어섰다.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하는 글줄과 함께 내 아이디가 박힌 입력커서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서너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동시에 나에게 인사말을 던져왔다.
‘안냐세여’ ‘방가’ ‘오홋, 새 손님이군’ 따위였을 인사말들. 나는 얼른 답글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자판을 두드렸지만 연신 오자에 오류에 난리였다. 도대체 이 얼굴도 뵈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통신공간에서 사람과 실시간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라운데다가, 생각 밖에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머릿속은 아연해질 지경이었고 갑자기 후끈 달아올라 요란해진 가슴의 박동이 손가락까지 흔들어놓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안녀허새이..’ 정도 되었을까, 알아볼 수도 없는 만신창이 인사말 한 줄을 올렸을 때는, 이미 서너 개의 인사말에 이어, ‘뭐야, 왜 암말도 없어요’ 같은 재촉글과 ‘아 짱나네, 짐 머하냐’ 같은 비난이 이어지다가 ‘걍 강퇴시켜’ 같은 주문까지 등장한 다음이었다. 아, 길고 당황스럽고 화끈거리던 시간이여. 물론, 내 답변이 올라간 것을 보고 한 숨 돌리는가 싶던 그 순간, 나는 이미 대기실로 밀려나고 있었다. 비참한 첫 경험이었다.

이왕 달아오른 김에 솟아난 오기로 나는 두어 번 더 도전을 했고,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쫒겨나거나, 아니면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왕따가 되어 한참동안 남들 잡담 구경이나 하다가 스스로 걸어나와야 했다. 자판이 익숙지 않아 손가락 두어 개로 더듬어대던 ‘독수리 타법’에다가, 아무도 알아볼 리 없는 새까만 모니터 앞에서 왜 그리 긴장은 되었던지. 나는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느라 세수를 두어 번이나 해대야 했었다.

매운 맛을 보고 나서 재도전하는 데는 적지 않은 용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다시 채팅에 도전한 것은 그 뒤로 몇 달이 지나서였다. 그 때도, 꽤나 뜸하던 자료실에 더 이상 다운받을 신통한 자료들이 남지 않은데다 동호회 기웃거리기도 지겨워졌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첫 날의 상처가 웬만큼 아문데다, 흥분하지만 않으면 어떻게 끼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좀 생길 무렵이었다. 나도 이젠 몇 달이고 경력이 생겼고, 컴맹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 날은 용의주도했다. 저희들끼리 화기애애한 공간에 끼어들어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 같았고, 그래서 단 한 사람이 들어가 있는 방을 공략하기로 했다. 혼자 심심하게 기다리느니 나하고라도 몇 줄이나마 놀아주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만만치가 않았다. ‘안녕하세요’를 집중 연습했던 덕에 두 번 정도 인사말을 트는 것은 성공했지만, 사는 곳이 어디고 뭘 좋아하고 등등 자기소개를 하는 데는 첫 날 인사말 쓸 때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그 사이 혼자 대여섯 줄씩 채우는데 짜증이 난 상대방들은 의외로 쉽게 짜증을 내고 막말을 하며 나가버리곤 했다. 아, 네티즌들 예의 없다는 소문이 있더니 이렇게 실감할 줄이야. 언제 본 사이라고 상욕을 해대다니.

그러나 그 날 마지막이다 하고 마음먹으면서 들어섰던 어느 방에서 나는 처음으로 채팅다운 채팅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혼자 글쇠를 이용해서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던 주인장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나는 들어서자마자 타자가 느리니 이해해달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초보라 그렇다는 부언을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덧붙이는데 성공했다.

주인장은 괜찮다고 했고, 실제로 오타가 몇 개씩 섞여 들어가는 나의 글줄을 보고는,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따뜻한 말까지 건네 왔다. 밖에 나가 나쁜 아이들에게 얻어맞고 와서는 엄마에게 응석 부리듯, 나는 이전에 만난 놈들이 얼마나 험한 짓을 나에게 했는지 일일이 일러바치기 시작했고, 상대방은 가끔 허허 웃어가면서 요즘 그런 아이들이 많다며, 이해하라고 했다. 얼음기 짱짱하던 통신공간에서 이렇게 따뜻한 사람을 만나다니, 나는 코끝이 시큰거릴 지경의 감격에 빠져버렸다. 그 순간 나는 그의 성별이 궁금해졌다.

친구들 중에서 가끔은 채팅으로 만난 여대생과의 데이트 경험담을 늘어놓는 녀석이 있었다. 대개, 기대에 형편없이 떨어지는 외모에 실망했다는 것이긴 했지만, 나는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다행스럽게 여성이기만 하다면 외모에 상관없이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마침 그 때, 고맙게도 상대가 먼저 나의 신상을 묻기 시작했다.

“님 몇 살?”

나이를 묻고 나면, 아마 성별을 물을 것이다. 아니, 묻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내가 질문이 있다면서 물으면 될 것이다. 쾌재를 올리며 답했다.

“24. 군대를 안가서 아직 대학생이예요”

군대 이야기. 슬쩍 남자라는 사실을 흘려보내기 위한 고도의 장치였다. 꼭 필요한 순간에 지능이 발휘되어 주면 신이 나게 된다. 그 순간에 그랬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낼 수 있었을까. 스스로 대견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떠오른 한 줄의 글. 한 삼십여 분 넘게 채팅하는 내내 혼자 흥분했던 나에게 찬 물 한 바가지가 확 끼얹어지는 느낌이었다. 그인지, 아니면 그녀인지 아직도 알 수 없는 그 상대방의 답변은 정말 기가 막힌 것이었다.

“악, 나의 두 배. 이젠 아저씨라고 부를게요.”

이내 순간적으로 반 쯤 마비된 두뇌에 억지로 ‘X×2 = 24’라는 유치한 수식을 굳이 그려 넣고서야 한참동안 나의 응석을 받아주고 위로를 해주던 저 따뜻하고 마음씨 고운 상대방의 나이인 X가 12. 고작 초등학교 5학년 쯤 되었을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저 상상만 해도 혀가 짧아지는 어린 아이와 그 오랜 시간 진심을 다 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말인가? 그 스스로 황당하고, 민망해 혼미한 정신을 수습하러 나는 황망히 인사말을 던지고 빠져나왔고, 내 인사말을 받은 순간부터 그 아이는 다시 태연하게 글쇠를 이용해 뱀이니 풍선이니 하는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긴, 다시 생각하면 오로지 분하고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느라 나는 정신이 나가 있었고, 그 아이가 해준 거라고는 가끔 하하 웃어주고, 또 맞장구 몇 번 쳐준 것뿐이 아니던가. 내가 혼자 흥분해서 그려놓은 그림에서 멀찍이 서있던 녀석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당황해 어쩔 줄 모르던 순간.

글쎄, 정말 그 친구는 남자였을까, 여자였을까. 그 때, ‘앞으로는 형, 혹은 오빠라고 부를게요’라고 썼다면 알 수도 있었을 텐데, 하필 애매하게 ‘아저씨’로 부르겠다는 글만 보고 나왔으니. 어쨌건, 아마 지금쯤 대학생이거나 아니면 벌써 졸업을 했을 지도 모르는 그 친구. 요즘 내가 메신저라도 탈 없이 쓰는 것도 어쩌면 그 친구 덕분일까.

하긴, 메신저라는 것을 처음 접했을 때도 적잖이 긴장을 했었다. 매일매일 대화명을 바꾸느라 짧지 않은 시간을 흘려보냈고, 또 시시때때로 나를 찾는 사람이 실망할까봐 ‘로그아웃으로 보이기’, 혹은 ‘다른 업무중’ 같은 표시를 달아 놓느라 분주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또 몇 달 지나지 않아 심상해진 요즘. 이렇게 나는 쉽게 물리고, 쉽게 무뎌진다. 그러고는 또 다른 재미를 찾아 건들거리고.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그래서 무뎌지기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신선한 일인가. 그리고 그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떨리고 즐거운 일인가. 초등학교 입학 첫 날, 선생님이 맺어준 대로 여자짝꿍과 손잡고 자기소개를 나누던 순간처럼, 그리고 그야말로 진지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던 열 두 살 차이 꼬마아이와의 첫 번째 채팅 때처럼 말이다.

혹, 메신저에 둥둥 떠 있는 저 아이디들도 혹 절절한 외로움을 멀뚱한 무관심으로 두르고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비어있는 시간에라도 내가 한 번 대화의 상대로 나서봐야 하겠다. 그래서 언제 한 번 한꺼번에 이런 메일이라도 날려볼 작정이다.

“너희들, 솔직히 요즘 심심하지 않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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